조각글

재생

두번의 만월 2015. 4. 30. 16:43

끼릭끼릭

오르골에 달려 있는 태엽을 감아 본다. 조그마한 오르골. 화려한 장식이 달린 것은 아니지만, 오래 간직해 온 소중한 오르골이다. 태엽을 감고 오르골을 책상 위에 가만히 올려 둔다. 띠리링 하고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태엽에 의해 일정하게 돌아가면서, 금속편이 튕겨지며 내는 맑은 소리. 청아한 선율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련해지는 소리. 돌아가기 시작한 오르골을, 가만히 책상 위에 머리를 모로 하고 댄 채 바라본다. 소박한 오르골. 작아서, 고작해야 한 소절이나 들어갈까 싶은 오르골이라, 금세 똑같은 선율이 반복해서 흘러 나온다. 감은 태엽이 남아 있는 만큼, 그 짧은 소절이 계속 반복해서 흘러나온다. 귓가를 멤도는 그 선율을 따라, 너 역시 내 머릿속에서 멤돈다. 반복되는 선율처럼, 계속해서 너는 내 머릿속에서 반복된다. 지금은 없는 네가…

얼마 감지 않은 것일까, 잔잔하게 이어지던 선율이 툭 하고 멈췄다. 나도 툭 하고 정신이 들었다. 성냥불이 꺼지면서 불 속에서 아른거리던 환상이 깨어져 나가는 것처럼. 나는 다시 손을 뻗어 오르골을 잡아 들고는 태엽을 돌린다. 끼릭끼릭. 이 소리는 귀에서 들리는 걸까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걸까. 그렇게 다시 책상 위에 오르골을 올려 둔다. 끊겼던 선율이 다시 울려 퍼진다. 성냥불을 다시 지핀 것처럼, 내 머릿속의 너도 다시 살아 움직인다. 맑은 선율을 자아내지만, 오르골은 악기가 아니다. 그저 기록되어 있는 것을 재생할 뿐. 선율을 되뇔 뿐. 되새길 뿐. 나 역시 너를 그렇게 되새길 뿐이다.

오르골은 여전히 자신의 일을 한다. 변함 없는 선율을 재생한다. 청아한 음을. 아련한 음을. 그리고 애잔한 음을. 이윽고 태엽이 서서히 멈춰 간다. 나 역시 서서히 눈을 감는다. 청아한 음은 떨림이란 흔적만을 공기 중에 남기고 간다. 그렇게 흩어져 간다. 좋은 냄새가 일순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