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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부정, 부정, 또 부정할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 탓일까, 난 마음을 걸어 잠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그런 의식을 했다는 것이, 이미 당신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라는 것을. 당신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럼에도 나는 부정했다. 내 마음이 아니라 미래를. 당신과 나는 너무 달랐으니까. 그래서 묻으려 했다. 당신으로 가득 찬 내 마음째로 묻으려 했다. 그 누구도 모르도록. 나도… 모르도록.

 하지만 나는 내 생각보다 약했던 모양이다. 단단한 땅이라 생각했는데 물이었던 모양이다. 묻었다 생각한 마음은 계속해서 떠올랐고, 흘러 넘쳤다. 이러면 안 되는데, 누구도 알아선 안 되는데…

 그래서 나는 흰 종이 위에 새하얀 색연필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썼다. 그 말을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나 자신도 모르도록… 이 마음 언젠가 사라지리라 믿으며, 흘러넘친 마음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도록, 쓰고 또 썼다. 아무리 써도, 누구도 모르리란 생각에. 나는 몰랐던 것이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똑같은 말을 그 자리에 계속 쓰다 보니, 보이지 않더라도 그 말이 점점 종이에 새겨져 갔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져 갔다는 것을… 

 이윽고 종이는 뚫리고 말았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문장 그 모양 그대로, 뚫리고 말았다. 이젠 누구나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당신조차도. 이제는... 지울 수도 없게 되었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글자 모양처럼, 내 마음은 멍이 들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당신을 앓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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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고할 때까지, 당신은 내게 상냥하게 대해 주시겠지요. 그리 생각하면 이 애틋한 감정을 마음에 묻어 두는 것도,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네요.

하지만 저는 나약해서, 이 마음 언젠가 흘러 넘칠까 두렵습니다. 이런 저이기에 앞으로 당신과 계속 함께일 순 없을 테지요. 그렇기에 지금, 계속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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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릭끼릭

오르골에 달려 있는 태엽을 감아 본다. 조그마한 오르골. 화려한 장식이 달린 것은 아니지만, 오래 간직해 온 소중한 오르골이다. 태엽을 감고 오르골을 책상 위에 가만히 올려 둔다. 띠리링 하고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태엽에 의해 일정하게 돌아가면서, 금속편이 튕겨지며 내는 맑은 소리. 청아한 선율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련해지는 소리. 돌아가기 시작한 오르골을, 가만히 책상 위에 머리를 모로 하고 댄 채 바라본다. 소박한 오르골. 작아서, 고작해야 한 소절이나 들어갈까 싶은 오르골이라, 금세 똑같은 선율이 반복해서 흘러 나온다. 감은 태엽이 남아 있는 만큼, 그 짧은 소절이 계속 반복해서 흘러나온다. 귓가를 멤도는 그 선율을 따라, 너 역시 내 머릿속에서 멤돈다. 반복되는 선율처럼, 계속해서 너는 내 머릿속에서 반복된다. 지금은 없는 네가…

얼마 감지 않은 것일까, 잔잔하게 이어지던 선율이 툭 하고 멈췄다. 나도 툭 하고 정신이 들었다. 성냥불이 꺼지면서 불 속에서 아른거리던 환상이 깨어져 나가는 것처럼. 나는 다시 손을 뻗어 오르골을 잡아 들고는 태엽을 돌린다. 끼릭끼릭. 이 소리는 귀에서 들리는 걸까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걸까. 그렇게 다시 책상 위에 오르골을 올려 둔다. 끊겼던 선율이 다시 울려 퍼진다. 성냥불을 다시 지핀 것처럼, 내 머릿속의 너도 다시 살아 움직인다. 맑은 선율을 자아내지만, 오르골은 악기가 아니다. 그저 기록되어 있는 것을 재생할 뿐. 선율을 되뇔 뿐. 되새길 뿐. 나 역시 너를 그렇게 되새길 뿐이다.

오르골은 여전히 자신의 일을 한다. 변함 없는 선율을 재생한다. 청아한 음을. 아련한 음을. 그리고 애잔한 음을. 이윽고 태엽이 서서히 멈춰 간다. 나 역시 서서히 눈을 감는다. 청아한 음은 떨림이란 흔적만을 공기 중에 남기고 간다. 그렇게 흩어져 간다. 좋은 냄새가 일순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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