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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에 노트로 필담을 하며 이야기와 웃음을 나누었다.
자리가 떨어졌을 땐 종이를 뭉치거나 비행기를 접어 몰래몰래 주고 받았다.
반이 갈리고 나선 쉬는 시간에 서로에게 편지를 건네고 받았다.
진로가 갈라진 뒤론 편지를 보내고 받았다.
이윽고 직장이 갈렸을 땐, 우린 앞으로 함께 하기를 서약했다.
지금과 같이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
매일 같이 만날 수 있던 나날이 지나가고
길을 가다 너를 우연히 만났을 때
나는 네게 책을 빌려 달라 했다.
네가 좋아하던 작가라
그 책은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그리 말했던 건
또 보자는 말을 꺼낼 용기가 없었기에.
가족, 친구, 연인.
사랑하는 사이에 미안하단 말은 하는 게 아니란 말, 필요없다는 말을 나는 오해하고 있었다. 서로를 아끼고 위해주는 관계이니, 잘못이 있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해 주기에 그런 말은 필요없다고, 그렇게 여겼었다. 그것이 사랑이란 말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다. 내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상대의 노력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나의 노력으로 성립되는 것임을, 뒤늦게 알았다. 사랑한다는 행위는, 나중에 '미안하다'고 해야 할 상황이 되지 않도록,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상대를 대하는 행위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내가 읊조린 미안하다는 말이, 절연을 고하는 말임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부정, 부정, 또 부정할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 탓일까, 난 마음을 걸어 잠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그런 의식을 했다는 것이, 이미 당신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라는 것을. 당신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럼에도 나는 부정했다. 내 마음이 아니라 미래를. 당신과 나는 너무 달랐으니까. 그래서 묻으려 했다. 당신으로 가득 찬 내 마음째로 묻으려 했다. 그 누구도 모르도록. 나도… 모르도록.
하지만 나는 내 생각보다 약했던 모양이다. 단단한 땅이라 생각했는데 물이었던 모양이다. 묻었다 생각한 마음은 계속해서 떠올랐고, 흘러 넘쳤다. 이러면 안 되는데, 누구도 알아선 안 되는데…
그래서 나는 흰 종이 위에 새하얀 색연필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썼다. 그 말을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나 자신도 모르도록… 이 마음 언젠가 사라지리라 믿으며, 흘러넘친 마음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도록, 쓰고 또 썼다. 아무리 써도, 누구도 모르리란 생각에. 나는 몰랐던 것이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똑같은 말을 그 자리에 계속 쓰다 보니, 보이지 않더라도 그 말이 점점 종이에 새겨져 갔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져 갔다는 것을…
이윽고 종이는 뚫리고 말았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문장 그 모양 그대로, 뚫리고 말았다. 이젠 누구나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당신조차도. 이제는... 지울 수도 없게 되었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글자 모양처럼, 내 마음은 멍이 들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당신을 앓아 갔다.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고할 때까지, 당신은 내게 상냥하게 대해 주시겠지요. 그리 생각하면 이 애틋한 감정을 마음에 묻어 두는 것도,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네요.
하지만 저는 나약해서, 이 마음 언젠가 흘러 넘칠까 두렵습니다. 이런 저이기에 앞으로 당신과 계속 함께일 순 없을 테지요. 그렇기에 지금, 계속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끼릭끼릭
오르골에 달려 있는 태엽을 감아 본다. 조그마한 오르골. 화려한 장식이 달린 것은 아니지만, 오래 간직해 온 소중한 오르골이다. 태엽을 감고 오르골을 책상 위에 가만히 올려 둔다. 띠리링 하고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태엽에 의해 일정하게 돌아가면서, 금속편이 튕겨지며 내는 맑은 소리. 청아한 선율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련해지는 소리. 돌아가기 시작한 오르골을, 가만히 책상 위에 머리를 모로 하고 댄 채 바라본다. 소박한 오르골. 작아서, 고작해야 한 소절이나 들어갈까 싶은 오르골이라, 금세 똑같은 선율이 반복해서 흘러 나온다. 감은 태엽이 남아 있는 만큼, 그 짧은 소절이 계속 반복해서 흘러나온다. 귓가를 멤도는 그 선율을 따라, 너 역시 내 머릿속에서 멤돈다. 반복되는 선율처럼, 계속해서 너는 내 머릿속에서 반복된다. 지금은 없는 네가…
얼마 감지 않은 것일까, 잔잔하게 이어지던 선율이 툭 하고 멈췄다. 나도 툭 하고 정신이 들었다. 성냥불이 꺼지면서 불 속에서 아른거리던 환상이 깨어져 나가는 것처럼. 나는 다시 손을 뻗어 오르골을 잡아 들고는 태엽을 돌린다. 끼릭끼릭. 이 소리는 귀에서 들리는 걸까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걸까. 그렇게 다시 책상 위에 오르골을 올려 둔다. 끊겼던 선율이 다시 울려 퍼진다. 성냥불을 다시 지핀 것처럼, 내 머릿속의 너도 다시 살아 움직인다. 맑은 선율을 자아내지만, 오르골은 악기가 아니다. 그저 기록되어 있는 것을 재생할 뿐. 선율을 되뇔 뿐. 되새길 뿐. 나 역시 너를 그렇게 되새길 뿐이다.
오르골은 여전히 자신의 일을 한다. 변함 없는 선율을 재생한다. 청아한 음을. 아련한 음을. 그리고 애잔한 음을. 이윽고 태엽이 서서히 멈춰 간다. 나 역시 서서히 눈을 감는다. 청아한 음은 떨림이란 흔적만을 공기 중에 남기고 간다. 그렇게 흩어져 간다. 좋은 냄새가 일순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세상이 거센 파도가 되어, 네가 이루려던 것을 휩쓸어 갈 수도 있어.
노력해서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는 일도,
다른 사람들이 널 몰라주고 손가락질을 하는 일도 있을 수 있지.
살다 보면, 그래, 어떤 슬픔도 절망도 찾아올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렇더라도, 슬픔만에 젖어들어, 멈추지 말았으면 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더라고, 자기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으면 해.
다시 일어나서, 살아줬으면 해. 이 세상에서 오직 너만이 가능한 일. '너'를 살아가는 것.
하루하루 '너'를 살아가줬으면 해.
달린다. 그저 앞을 향해 달려간다. 어디로? 모르겠다. 그걸 알기 위해 달리는 걸까. 어쩌면 멈춰선 안 되니까 달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앞이라곤 해도, 확신은 없다.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저 지금 이렇게 달리고 있으니 적어도 앞을 향하고 있겠지 하고 생각할 뿐.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렸다. 무언가를 찾고, 어딘가에 이르려는 듯. 혹은 뒤에 쫓아오는 무언가가 있다는 듯. 숨이 차오른다. 급격하게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폐 때문일까, 가슴이 아파온다. 갑갑하다. 가슴팍이, 갈비뼈가, 폐가 아파온다. 입이 점점 말라간다. 고관절은 삐걱거리기 시작한 지 오래고, 다리 근육마저 욱씬거려 온다. 아니 전신이 아파온다. 그럼에도 달린다. 왜? 모르겠다. 한계가 점점 다가옴을 느낀다. 달리는 이유도 모르면서, 오직 그것만이 정답인 양 자신의 몸을 채찍질해 간다. 하지만 결국 한계가 찾아 온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더라도 정신이 육체에 매여있는 이상, 정해져 있던 결말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이유도 모른 채 앞만을 향해 달리던 몸이 쓰러진다. 바닥에 쓰러지고 나서, 겨우 옆을 바라볼 생각이 들었다. 아니 드디어 그럴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옳겠지. 그리고 이윽고 그는 깨달았다. 거대함과 완만한 휘어짐 때문에 눈치 채지 못했을 뿐, 자신은 어떤 장벽 내에서 그저 그 안을 계속 돌고 있었을 뿐이란 것을. 앞을 향해서, 그저 그것만을 생각하고 달렸지만, 사실은 그저 같은 곳을 멤돌았었을 뿐이란 것을. 이유도 모른 채, 어쩌면 그 끝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달렸던 것의 결과가 제자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윽고 하나의 사실에 생각이 미친다. 내가 향해야 했던 곳은, 앞이라 믿었던 눈앞이 아니라, 저 장벽 너머였다는 것. 하지만 그 생각을 따라줘야 할 육신은, 이미 너무나도 지쳐, 그는 그저 그 생각과 지난날을 돌아보며 드는 후회만을 품은 채, 하염없이 장벽 너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인생은 살아가며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고 경험해 가는 여정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인생은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여정이란 생각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삶이 이어짐에 따라, 나는 어떤 결말에 이르는가. 그것을 알아가는 여정